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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 LEE SUN 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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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scape

  • 2012 제작
  •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 162.2 X 97cm , 63.86 X 38.19inch

소개

오늘날 현대 도시는 기술이 마르크스주의적 경제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대신하고 가치합리성(Wertrationalitat)보다 목적합리성(Zweckrationaliatt)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전이시켰다. 이처럼 가치를 제고하지 않는 목적합리성의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소비사회의 도래는 타자화된 욕망에 포획된 도시와 인간주체의 혼돈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 욕망의 구조 안에 갇힌 도시는 대타자인 자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상만을 기계처럼 생성하며, 개인의 특이성을 구성하지 못하고 규격화된 준거 틀에만 지배받도록 동질화된 주체성을 양산한다. 결국 도시를 삶의 공간으로 여겨왔던 도시민은 도시의 환영 속에서 소외와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본인의 시선에 투영된 도시 공간은 파편화된 욕망들의 수목적인 이미지의 군집으로, 물질적 시선들 안에 갇힌 규격화된 큐브와 닮았다. 본인은 그 큐브 안에서 권력과 자본, 계급으로 인한 수목적인 폭력성에 익숙해져 갔으며, 더 많은 불안과 두려운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그 공간 안에 만들어진 도시의 욕망이 알 수 없는 사회의 규칙적인 준거 틀들을 더 증식시키는 것 같았다. 본인은 수목적 위계에 갇힌 도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 다양체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새로이 확장하는 리좀적 시선을 제시한다. 리좀(Rhizome)적 시선은 시작도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사이-존재의 변주곡이다. 리좀(Rhizome)은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개념으로 철학자 들뢰즈(Deleuze)와 과타리(Guattari)에 의해 수목으로 표상되는, 이분법적인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인 구조와 대비되는 관계들의 사유 모델이다. 나무모양의 사고방식, 즉 수목적 사유는 서구 형이상학의 사유 구조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중심과 일자, 위계적 사유에 대항하는 대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리좀적 시선은 고정된 주체나 객체로 환원되지 않고, 연결 접속된 관계를 통해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multiplicite)'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좀은 기존의 코드화된 세계 위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증식하는 선, 즉 탈주선(une ligne de fuite)에 해당한다.
 본인의 작업은 고착화된 수목적 도시 공간을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과 흐름, 순수 생성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리좀적 사유는 수목적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심리적 해방의 기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정된 중심과 주체는 없다고 말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뻗어나가면서 새로운 존재로 생성되어 가는데, 본인은 반계보적이고 유연한 복수의 다양체를 낳는 리좀의 사유를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 즉 이 도시에 입히고 싶었다. 규격화된 큐브의 집합체와도 같은 도시의 상투적 이미지를 지우기라도 하듯, 그 위에 ‘새로운 변이와 팽창과 정복과 포획과 꺽꽂이’와 같은 리좀의 자유분방한 뻗어나감을 형상화했다.
 작업에서 보여지는 주된 이미지는 수목적이고 획일화된 도시 공간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거나, 패치워크의 형상과 유사하게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연결하여 시각적 리듬으로 변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중첩되고 재조합된 다층적 관계에 대한 유연한 시선들은 화면 속에 갇혀진 무한 공간 속을 부유하며 때로는 화답하고, 때로는 서로 흩어진다. 이러한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위계적인 나무구조에 대립하여 하나의 통일된 구조 내에 통합되지 않으며, 비위계적이고 수평적인 다양체들의 연결로 중심이 없는 무한한 연결과 다양한 차이들의 생성을 만드는 시각적 재구성이다. 본인이 제시하는 그 확산된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스스로 번져가는 공간이자, 규격화된 구조의 틀 안에 갇힌 공간이 아닌 유동적인 공간이자 스스로 ‘생성하는’ 공간이다. 본인은 획일화 된 틀과 같은 중심의 사유를 거부하는 다양한 시선들의 변주를 통해, 현대인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조화로움과 마주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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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작품정보
작품명 cityscape
제작년도 2012 년
크기 63.86 inch × 38.19 inch, 162.2 cm × 97 cm
장르 회화
테마 풍경,공간
컬러
녹색 보라색 분홍색
재료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설명

오늘날 현대 도시는 기술이 마르크스주의적 경제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대신하고 가치합리성(Wertrationalitat)보다 목적합리성(Zweckrationaliatt)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전이시켰다. 이처럼 가치를 제고하지 않는 목적합리성의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소비사회의 도래는 타자화된 욕망에 포획된 도시와 인간주체의 혼돈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 욕망의 구조 안에 갇힌 도시는 대타자인 자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상만을 기계처럼 생성하며, 개인의 특이성을 구성하지 못하고 규격화된 준거 틀에만 지배받도록 동질화된 주체성을 양산한다. 결국 도시를 삶의 공간으로 여겨왔던 도시민은 도시의 환영 속에서 소외와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본인의 시선에 투영된 도시 공간은 파편화된 욕망들의 수목적인 이미지의 군집으로, 물질적 시선들 안에 갇힌 규격화된 큐브와 닮았다. 본인은 그 큐브 안에서 권력과 자본, 계급으로 인한 수목적인 폭력성에 익숙해져 갔으며, 더 많은 불안과 두려운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그 공간 안에 만들어진 도시의 욕망이 알 수 없는 사회의 규칙적인 준거 틀들을 더 증식시키는 것 같았다. 본인은 수목적 위계에 갇힌 도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 다양체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새로이 확장하는 리좀적 시선을 제시한다. 리좀(Rhizome)적 시선은 시작도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사이-존재의 변주곡이다. 리좀(Rhizome)은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개념으로 철학자 들뢰즈(Deleuze)와 과타리(Guattari)에 의해 수목으로 표상되는, 이분법적인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인 구조와 대비되는 관계들의 사유 모델이다. 나무모양의 사고방식, 즉 수목적 사유는 서구 형이상학의 사유 구조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중심과 일자, 위계적 사유에 대항하는 대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리좀적 시선은 고정된 주체나 객체로 환원되지 않고, 연결 접속된 관계를 통해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multiplicite)'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좀은 기존의 코드화된 세계 위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증식하는 선, 즉 탈주선(une ligne de fuite)에 해당한다.
 본인의 작업은 고착화된 수목적 도시 공간을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과 흐름, 순수 생성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리좀적 사유는 수목적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심리적 해방의 기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정된 중심과 주체는 없다고 말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뻗어나가면서 새로운 존재로 생성되어 가는데, 본인은 반계보적이고 유연한 복수의 다양체를 낳는 리좀의 사유를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 즉 이 도시에 입히고 싶었다. 규격화된 큐브의 집합체와도 같은 도시의 상투적 이미지를 지우기라도 하듯, 그 위에 ‘새로운 변이와 팽창과 정복과 포획과 꺽꽂이’와 같은 리좀의 자유분방한 뻗어나감을 형상화했다.
 작업에서 보여지는 주된 이미지는 수목적이고 획일화된 도시 공간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거나, 패치워크의 형상과 유사하게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연결하여 시각적 리듬으로 변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중첩되고 재조합된 다층적 관계에 대한 유연한 시선들은 화면 속에 갇혀진 무한 공간 속을 부유하며 때로는 화답하고, 때로는 서로 흩어진다. 이러한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위계적인 나무구조에 대립하여 하나의 통일된 구조 내에 통합되지 않으며, 비위계적이고 수평적인 다양체들의 연결로 중심이 없는 무한한 연결과 다양한 차이들의 생성을 만드는 시각적 재구성이다. 본인이 제시하는 그 확산된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스스로 번져가는 공간이자, 규격화된 구조의 틀 안에 갇힌 공간이 아닌 유동적인 공간이자 스스로 ‘생성하는’ 공간이다. 본인은 획일화 된 틀과 같은 중심의 사유를 거부하는 다양한 시선들의 변주를 통해, 현대인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조화로움과 마주하길 기도해 본다.

대여상태 대여가능

작가정보

작가 프로필 사진
작가정보
작가 이름 이선화
예명(호)
출생년도
국적 대한민국
홈페이지 http://
페이스북 http://
자기소개

 

오늘날 현대 도시는 기술이 마르크스주의적 경제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대신하고 가치합리성(Wertrationalität)보다 목적합리성(Zweckrationaliätt)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전이시켰다. 이처럼 가치를 제고하지 않는 목적합리성의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소비사회의 도래는 타자화된 욕망에 포획된 도시와 인간주체의 혼돈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 욕망의 구조 안에 갇힌 도시는 대타자인 자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상만을 기계처럼 생성하며, 개인의 특이성을 구성하지 못하고 규격화된 준거 틀에만 지배받도록 동질화된 주체성을 양산한다. 결국 도시를 삶의 공간으로 여겨왔던 도시민은 도시의 환영 속에서 소외와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본인의 시선에 투영된 도시 공간은 파편화된 욕망들의 수목적인 이미지의 군집으로, 물질적 시선들 안에 갇힌 규격화된 큐브와 닮았다. 본인은 그 큐브 안에서 권력과 자본, 계급으로 인한 수목적인 폭력성에 익숙해져 갔으며, 더 많은 불안과 두려운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그 공간 안에 만들어진 도시의 욕망이 알 수 없는 사회의 규칙적인 준거 틀들을 더 증식시키는 것 같았다. 본인은 수목적 위계에 갇힌 도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 다양체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새로이 확장하는 리좀적 시선을 제시한다. 리좀(Rhizome)적 시선은 시작도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사이-존재의 변주곡이다. 리좀(Rhizome)은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개념으로 철학자 들뢰즈(Deleuze)와 과타리(Guattari)에 의해 수목으로 표상되는, 이분법적인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인 구조와 대비되는 관계들의 사유 모델이다. 나무모양의 사고방식, 즉 수목적 사유는 서구 형이상학의 사유 구조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중심과 일자, 위계적 사유에 대항하는 대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리좀적 시선은 고정된 주체나 객체로 환원되지 않고, 연결 접속된 관계를 통해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multiplicité)'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좀은 기존의 코드화된 세계 위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증식하는 선, 즉 탈주선(une ligne de fuite)에 해당한다.
 본인의 작업은 고착화된 수목적 도시 공간을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과 흐름, 순수 생성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리좀적 사유는 수목적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심리적 해방의 기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정된 중심과 주체는 없다고 말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뻗어나가면서 새로운 존재로 생성되어 가는데, 본인은 반계보적이고 유연한 복수의 다양체를 낳는 리좀의 사유를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 즉 이 도시에 입히고 싶었다. 규격화된 큐브의 집합체와도 같은 도시의 상투적 이미지를 지우기라도 하듯, 그 위에 ‘새로운 변이와 팽창과 정복과 포획과 꺽꽂이’와 같은 리좀의 자유분방한 뻗어나감을 형상화했다.
 작업에서 보여지는 주된 이미지는 수목적이고 획일화된 도시 공간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거나, 패치워크의 형상과 유사하게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연결하여 시각적 리듬으로 변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중첩되고 재조합된 다층적 관계에 대한 유연한 시선들은 화면 속에 갇혀진 무한 공간 속을 부유하며 때로는 화답하고, 때로는 서로 흩어진다. 이러한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위계적인 나무구조에 대립하여 하나의 통일된 구조 내에 통합되지 않으며, 비위계적이고 수평적인 다양체들의 연결로 중심이 없는 무한한 연결과 다양한 차이들의 생성을 만드는 시각적 재구성이다. 본인이 제시하는 그 확산된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스스로 번져가는 공간이자, 규격화된 구조의 틀 안에 갇힌 공간이 아닌 유동적인 공간이자 스스로 ‘생성하는’ 공간이다. 본인은 획일화 된 틀과 같은 중심의 사유를 거부하는 다양한 시선들의 변주를 통해, 현대인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도시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조화로움과 마주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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