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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수 hyesoo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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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alive but It's in bloom no.2

  • 2019 제작
  • oil paint
  • 39.5 X 48cm , 15.55 X 18.9inch

소개

Not alive but it's in bloom

산책 중에 꽃잎과 꽃잎 대와 잎 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온듯한 식물을 보았다.
겉보기엔 단단했고 색이 다 바래서 흙과 같아 졌지만 시든 것이 아니라 피어있는 상태로 화석화 된 것 같은, 상태가 유예된 모습이었다. 이 식물은 살아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보는 순간 bloom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생기 있게 살아있는 꽃에만 쓸 수 있는 말일까. 살아있지 않는 것은 피어나거나 만개한 상태일 수 없을까.
그냥 우리가 그렇게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었을까, 죽은 꽃에게는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혹은 죽어있으나 핀 것 같은)에 있을 것 같은 꽃들을 모아다가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 ‘죽었다’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정한 그 지점에, 그 꽃을 고른 그 순간에 결정 되었던 걸까
이 꽃들의 상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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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작품정보
작품명 Not alive but It's in bloom no.2
제작년도 2019 년
크기 15.55 inch × 18.9 inch, 39.5 cm × 48 cm
장르 회화
테마 풍경,기타
컬러
재료 oil paint
설명

Not alive but it's in bloom

산책 중에 꽃잎과 꽃잎 대와 잎 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온듯한 식물을 보았다.
겉보기엔 단단했고 색이 다 바래서 흙과 같아 졌지만 시든 것이 아니라 피어있는 상태로 화석화 된 것 같은, 상태가 유예된 모습이었다. 이 식물은 살아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보는 순간 bloom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생기 있게 살아있는 꽃에만 쓸 수 있는 말일까. 살아있지 않는 것은 피어나거나 만개한 상태일 수 없을까.
그냥 우리가 그렇게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었을까, 죽은 꽃에게는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혹은 죽어있으나 핀 것 같은)에 있을 것 같은 꽃들을 모아다가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 ‘죽었다’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정한 그 지점에, 그 꽃을 고른 그 순간에 결정 되었던 걸까
이 꽃들의 상태는 무엇인가?

대여상태 대여가능

작가정보

작가 프로필 사진
작가정보
작가 이름 권혜수
예명(호)
출생년도
국적 대한민국
홈페이지 http://hyesoo1989@instagram
페이스북 http://
자기소개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경계를 만들고 범주를 만들어 분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분류로 나누는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연물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도 않는 분위기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한번 분류가 된 대상은 다른 범주로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재분류를 위해 재고되기도 어렵다. 어떤 범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것의 한계가 이미 정해졌다는 말이다. 이것은 통제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제권이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면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안전해야하고, 위험을 제거해야하고 정확히 알 수도 없을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헛된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도 않다.
범주로 나누어서 정보를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는 태도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정보를 조각내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파편들만 재빠르게 파악하고 싶어 해서 한 가지에 대해 깊게,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보려 하지 않는다. 전후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조각을 보았으면 그 대상은 파악이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이 시간성을 가지고 변화하고 있으며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 식의 파편적인 읽기(감상하기)는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사실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짓이다. 
대상이 경계에 있는 애매한 것이면 더욱이 파악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미묘하고 모호해서 쉽게 파악하기 힘든 것들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적으로 교류하거나 친목을 맺을 때면 미묘한 기류들을 아주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 이것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것이고, 굉장히 미묘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다. 몸이 움직이고 분위기가 움직인다. 순간적인 변화라도 감지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몸짓언어는 조금이라도 기준에서 벗어나면(이런 것들은 거의 이야기 된 적이 없다. 우리는 저 사람이 방금 아주 조금 이상한 각도로 움직인 것 같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몸짓언어에는 몸짓언어 자체가 가지는 암묵적인 코드의 강제적인 한계 같은 것이 있다. 각자의 몸짓언어는 자신도 모르게 최적화 되지만 사회에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도 결국은 범주 안에서 움직인다.
우리는 미묘하고 애매한 것들을 미시하기 때문에, 범주 밖의 것은 놓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란 실수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감각을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한 채. 그러나 사실, 우리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런 미묘한 것들이 표현될 수 있다면 대상자체가 포착되지는 않아도 그것을 내포하는 이미지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순간적인 판단에 맡겨 모든 것들에 대해 거대한 착각 속에 살아가는 문제가 해소가 된다면. 
모든 것들의 상태엔 흐름이 있다. 애매한 것 미묘한 것 경계 사이에 있는 것.
미묘한 것들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아니고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이것들은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움직임을 그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고정된 이미지로 내버려 두기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쓸려 나가게 된다. 미묘한 분위기라는 것은 층층이 겹겹이 얇은 시트들이 중첩되어서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숨에 봐서는 보이지 않고 내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상태를 얇게 절편해서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시간성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쌓아올리고 레이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대상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 조금씩 변화하는 분위기를 담아야 한다. 흐르는 물감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선을 움직이고 지워 내거나 가리거나 덮어버린다. 모든 것의 상태가 계속해서 변화하듯이 그림도 계속해서 움직인다. 어떤 것들은 굳어지고 덩어리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 아래엔 이미지들이 있다. 아주 얇게.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경계를 만들고 범주를 만들어 분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분류로 나누는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자연물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도 않는 분위기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한번 분류가 된 대상은 다른 범주로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재분류를 위해 재고되기도 어렵다. 어떤 범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것의 한계가 이미 정해졌다는 말이다. 이것은 통제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제권이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면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안전해야하고, 위험을 제거해야하고 정확히 알 수도 없을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헛된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도 않다.
범주로 나누어서 정보를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는 태도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정보를 조각내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파편들만 재빠르게 파악하고 싶어 해서 한 가지에 대해 깊게,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보려 하지 않는다. 전후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조각을 보았으면 그 대상은 파악이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이 시간성을 가지고 변화하고 있으며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 식의 파편적인 읽기(감상하기)는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사실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짓이다. 
대상이 경계에 있는 애매한 것이면 더욱이 파악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미묘하고 모호해서 쉽게 파악하기 힘든 것들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적으로 교류하거나 친목을 맺을 때면 미묘한 기류들을 아주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 이것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것이고, 굉장히 미묘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다. 몸이 움직이고 분위기가 움직인다. 순간적인 변화라도 감지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몸짓언어는 조금이라도 기준에서 벗어나면(이런 것들은 거의 이야기 된 적이 없다. 우리는 저 사람이 방금 아주 조금 이상한 각도로 움직인 것 같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몸짓언어에는 몸짓언어 자체가 가지는 암묵적인 코드의 강제적인 한계 같은 것이 있다. 각자의 몸짓언어는 자신도 모르게 최적화 되지만 사회에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도 결국은 범주 안에서 움직인다.
우리는 미묘하고 애매한 것들을 미시하기 때문에, 범주 밖의 것은 놓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란 실수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감각을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한 채. 그러나 사실, 우리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런 미묘한 것들이 표현될 수 있다면 대상자체가 포착되지는 않아도 그것을 내포하는 이미지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순간적인 판단에 맡겨 모든 것들에 대해 거대한 착각 속에 살아가는 문제가 해소가 된다면. 
모든 것들의 상태엔 흐름이 있다. 애매한 것 미묘한 것 경계 사이에 있는 것.
미묘한 것들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아니고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이것들은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움직임을 그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고정된 이미지로 내버려 두기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쓸려 나가게 된다. 미묘한 분위기라는 것은 층층이 겹겹이 얇은 시트들이 중첩되어서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숨에 봐서는 보이지 않고 내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상태를 얇게 절편해서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시간성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쌓아올리고 레이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대상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 조금씩 변화하는 분위기를 담아야 한다. 흐르는 물감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선을 움직이고 지워 내거나 가리거나 덮어버린다. 모든 것의 상태가 계속해서 변화하듯이 그림도 계속해서 움직인다. 어떤 것들은 굳어지고 덩어리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 아래엔 이미지들이 있다. 아주 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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